[[활동]]중장년 논의를 위한 두 개의 초석

사단법인 씨즈 중장년 포럼 ‘한국 중장년 사업, 새로운 물결’ 리뷰 ①



청년 혁신 기업의 성장을 지원해 온 사단법인 씨즈(이사장 이은애)는 세대 간 연대로 청년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2023년 중장년사업본부를 신설했습니다. 씨즈 중장년사업본부는 중장년 포럼을 연속 개최해 한국 사회 중장년 이슈를 조명하고, 구체적인 세대 연대 방안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2023년 4월 19일 개최된 첫 번째 중장년 포럼 '한국 중장년 사업, 새로운 물결'을 두 편의 글로 요약해 중계합니다.  



“중장년 정책과 사업이 시작된 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저 장밋빛 미래만 그릴 수 없는 현실에서 우리는 어른 세대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이정인 씨즈 중장년사업본부 팀장이 던진 질문으로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날 포럼 1부에서 진행된 두 발제는 앞으로 중장년 연속 포럼에서 이뤄질 여러 논의의 초석을 다지는 개론의 역할을 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 주자로 나선 유시주 작가는 ‘100세 시대 중장년 전환기의 의미’라는 발제로 포럼의 문을 열었습니다. 



새로운 시절의 탄생 


유 작가는 중장년 전환기는 20세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라고 지적합니다. 특별히 사람들이 생애 주기의 한 시절로 인식하지도 않았고, 거론하지도 않았다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중장년 전환기는 청소년기와 유사합니다. 놀랍게도 청소년기 역시 19세기 후반 이후에 탄생한 개념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아이를 ‘작은 어른’ 정도로 바라봤습니다. 인간이 성장하고 발달하는 존재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던 겁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청소년기에 이어서 없다가 새로 생겨난 두 번째 시절이 중장년 전환기예요. 중장년 전환기로 노년이 길어진 것이 아니라 생애 주기상 새로운 시절이 탄생한 거예요.”


청소년기와 중장년 전환기의 또 다른 공통점은 ‘전환기’라는 것입니다. 청소년기에 우리는 사회에 불만을 느끼거나 방황하고 탐색합니다. 이러한 청소년의 모습을 우리는 성장통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중장년의 방황과 탐색은 빈축을 사죠. 유 작가는 이러한 시선은 부당하다고 말합니다. 중장년의 방황 역시 전환기를 겪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대응으로 바라봐야 하는 것이죠.        


잘 내려오려면 


“두 시절이 전환기로서 공통적인 특성을 갖는데, 큰 차이도 있어요. 청소년은 상향 전환기예요. 많은 역량을 쌓고 획득해야 하는 시기이죠. 그런데 중장년 전환기는 하향 전환기예요. 여기에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빈 땅에 무엇이든 쌓아 올려도 되는 청소년기와 달리, 중장년 전환기에는 우선 견고하게 쌓인 것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중장년 세대가 자라면서 부모를 보고 배웠던 어른의 생애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경험과 자신이 아는 사실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는 것은 ‘다른 시절’이 중장년 세대를 기다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유 작가는 하향 전환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심을 잡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등산할 때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기 삶의 우선순위를 재평가하고 조정해야 한다”는 당부도 덧붙였습니다.   


“전환기는 변화를 향한 욕구가 굉장히 강할 때인데 이때 중요한 게 자신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거예요. 청소년기 이후 대학에 들어가고,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는 과정에서는 사실 자신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기가 힘들어요. 그런데, 이 하향 전환기에 발을 헛디디지 않고 잘 내려오기 위해서는 청소년기에 그랬던 것처럼 내가 어떤 사람인가, 나는 누구인가, 질문하고, 탐색하고, 학습해야 해요.”


유 작가는 계속 중장년 전환기의 과제를 짚었습니다. 중심을 잘 잡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양질의 사회적 관계입니다.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특히, 고독사 최고 위험군이라고 할 수 있는 50~60대 남성은 생존 기술의 하나로서 관계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장년 전환기의 일은 개인적으로 대처하기가 가장 어려운 영역입니다. 제도적인 대응과 지원이 가장 필요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죠. 유 작가는 “계급, 계층 등 단순히 연령만으로 환원할 수 없는 변수와 차이가 존재한다”면서 공공 영역의 세심한 대처를 주문했습니다.


중장년 전환기에 요구되는 규범과 윤리, 매너도 존재합니다. 유 작가는 “말과 욕망, 고독, 불안, 두려움을 다루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가르치는 말, 자랑하는 말, 묻지도 않은 말”을 잘 다룰 수 있어야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유시주 작가 


공적 의무를 생각한다 


유 작가가 마지막으로 언급한 중장년 전환기의 과제는 ‘원로 시민으로서의 공적 의무’입니다. 우리는 사인(私人)으로 살아가는 동시에, 공적 신분이라고 할 수 있는 시민으로 살아갑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시민으로서 공적 의무를 다할 책임이 있습니다. 


공적 의무, 공적 기여, 사회적 기여 등의 개념을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유 작가는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기 위해 고심하는 것도 공적 기여”라고 말합니다. 유 작가가 제안하는 공적 의무의 출발점은 더 간단합니다.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가 한 말인데요. 다른 사람에게 조금 더 친절하게 대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면 어떻겠느냐는 거예요. 특히, 친절한 대우를 받기 힘든 처지에 있는 분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으로 공적 의무를 시작하면 굉장히 좋겠다고 생각해요.”


중장년 세대가 충실하게 공적 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사회를 위해서도 무척 중요한 일입니다. 이제 한국은 많은 영역에서 세계 상위권을 차지하는 국가가 되었지만, 행복도, 출산율, 자살률 등의 지표로 바라본 한국 사회는 행복한 사회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또, 높은 온라인 연결성 때문에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 문제가 시차 없이 한국에서도 확산하고, AI와 같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정신없이 새로운 변화를 유발합니다. 한국 사회의 중장년 세대가 사회의 원로 시민으로 중심을 잘 잡을 때, 다른 세대도 안정적으로 시대의 변화를 헤쳐갈 수 있습니다. 


“중장년 세대가 새로운 자기 인식부터 시작해 치열한 모색과 고민을 거쳐 전환을 이뤄내고, 지금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길을 잘 찾아 나가야죠. 그렇게 해서 우리가 좋은 어른이 되고, 훌륭한 원로 시민이 되면, 이는 결국 한국 사회의 혁신으로 수렴될 거예요.”



한국 중장년 활동과 제도화의 역사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남경아 씨즈 중장년사업본부장은 ‘한국 사회 중장년 활동 17년, 제도화 11년; 탐색과 모색’이라는 제목으로 논의를 이어갔습니다. 그의 분류에 따르면 중장년 활동과 제도화의 태동기라고 할 수 있는 1기부터 ‘새로운 물결’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4기에 이르기까지 약 17년의 기간을 4개의 기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기(2006~2010)는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중장년 이슈에 천착한 사업이 시작된 태동기입니다. 2006년 민간 싱크탱크인 희망제작소에서 대한생명과 손잡고 해피시니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장기간의 로드맵 아래 전략적으로 진행한 첫 번째 중장년 사업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0년은 한국 중장년 제도화의 역사에서 상징적인 해인데요. 베이비붐 세대의 대규모 은퇴가 시작되면서 중앙 정부가 여러 계획을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2기(2011~2016)는 공공정책 시작기입니다.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가 본격적으로 정책을 실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베이비붐 세대 전담 조직을 신설했고, 고용노동부는 사회공헌 일자리 사업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시도 2012년 인생이모작지원센터를 설립하면서 이러한 흐름에 함께했고, 2016년에는 서울시50플러스재단을 설립하기에 이릅니다. 


3기(2017~2022)는 공공정책 확장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7년 정부는 ‘신중년 인생 3모작 기반 구축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5060세대의 인생 설계 모델을 제시한 최초의 중앙정부 차원의 로드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 87개 지자체에서 중장년 관련 조례를 제정하면서 중장년 문제가 한국 사회의 중요한 정책 의제로 자리매김합니다. 


4기로 분류된 2022년 이후부터는 코로나 팬데믹 등을 거치면서 중장년 정책과 활동 영역에서 새로운 물결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의미 있는 변화가 감지됩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사업 주체의 등장이 눈길을 끕니다. 복지나 공공 영역을 넘어 청년 세대, 마을 공동체, 지역 시민사회 등에서도 중장년 이슈가 중요한 의제로 떠오른 것입니다.  


🔹 남경아 사단법인 씨즈 중장년사업본부장


정책 방향 제언 


중장년 사업 관계자들이 이와 같은 새로운 흐름을 잘 타기 위해선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남 본부장은 현장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몇 가지 정책 방향을 제언했습니다.


“청년 문화는 있는데 중장년 문화도 있느냐는 질문을 굉장히 많이 받았습니다. 중장년 세대는 세대 범위가 20년에 걸쳐 있기 때문에 많은 이질성이 있습니다. 또 이혼, 사별, 투병, 부모 돌봄과 같이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겪다 보니 각자의 생애 경험 사이에도 굉장히 간극이 큽니다.”


남 본부장은 이러한 세대 내 이질성을 감안해 중장년 정책에서 학력, 경제력, 건강 상태, 활력 수준에 따른 다차원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문합니다. 또, 일자리, 교육 등에 치중하는 기능적인 접근법을 넘어 정서, 문화 요소까지 포함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도 언급했습니다. 


남 본부장은 또 중장년 세대를 사회 문제가 아닌 자원으로 바라보는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을 강조했습니다. 각 지원 기관의 특성을 고려한 효율적인 역할 분담과 협력 체계도 과제입니다. 중장년 정책 전달 체계에서는 특히 오프라인 공간이 중요합니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자유롭게 이합집산하는 청년들과는 달리 중장년 세대에게는 오프라인 전용 공간이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현재 중장년 정책의 콘텐츠와 관련해 제기되는 가장 큰 문제는 콘텐츠의 다양성이 부족하고, 콘텐츠 수혜 대상이 한정적이라는 점인데요. 많은 프로그램이 중복되고, 더 많은 시민이 정책 효용을 체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남 본부장은 온라인 포털과 비대면 서비스의 활용, 유사 프로그램 통합, 정책의 브랜드화로 임팩트 제고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당사자성이 열쇠다


남 본부장은 중장년 정책을 중장년 정책답게 만드는 핵심 키워드로 ‘당사자성’을 꼽았습니다. 당사자성이란 특정 사회 문제와 직접 관련된 이해당사자들이 스스로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것을 뜻합니다. 노인 복지나 노인 정책은 ‘당사자가 보이지 않는다, 당사자의 시선이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을 많이 받습니다. 남 본부장은 “중장년 정책에서 당사자성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합니다. 


중장년 세대 당사자들 역시 운동의 방향성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생활 의제를 발굴하고, 같은 세대, 위아래 세대와의 연대를 고민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보다 작은 것부터 축적하는 경험도 중요합니다. 


“미국 중장년 세대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 동안 진행하는 액션 플랜을 짰는데, 목표와 미션이 매우 분명했어요. 미국 중장년 세대 100만 명이 모여서 미국 어린이들이 3학년이 될 때까지 읽고 쓸 수 있게 돕자, 이거였어요. 매우 구체적인 미션을 갖고 미국 전역에서 운동을 펼쳤습니다.” 


남 본부장은 중장년 세대가 스스로 공공 영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자조적인 당사자 운동의 역사가 긴 미국이나 유럽 등의 해외 사례를 벤치마킹하면서 자립의 정신과 노하우를 배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모든 자리에서 우리는 인류가 맞이한 첫 번째 노년층이다, 항상 이렇게 얘기해요. 인구가 가장 많고, 학력 수준이 가장 높고, 가장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다, 그런 것들이 근거인데요. 이제는 그런 근거들에 기대지 않고, 우리가 인류가 맞이한 첫 번째 노년층이라는 것을 증명해 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증거도 남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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